배경
주장자
- 연세대학교 설성경 교수, 문과대학 인문학부, 춘향전 계통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 받음.
- 연구관심 분야 : 한국고전문학 및 춘향예술사 분야
- '설'교수는 지난 '99. 11. 3.과 11. 23. 일본 및 국내에서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라는 주제의 연구 논문을 통해 공식발표.
본 주장관련 보도일지
- 1999. 11. 18. 조선일보 '이몽룡은 실존인물' 제하 보도
- 1999. 11. 18. 매일신문 '춘향전 이몽룡은 실존인물' 보도
- 1999. 12. 1. 대구일보 '춘향전 이몽룡은 실존 인물이었다' 보도
- 1999. 12. 2. 시사저널 '성춘향과 이도령은 실존인물이었다'보도
- 1999. 12. 4. KBS1 TV 역사스페셜 '이몽룡은 실존인물 이었다' 방영.
- 1999. 12. 7. 신경북일보 '이몽룡은 봉화사람' 보도
- 1999. 12. 7. 매일신문 '봉화군 춘향전 이도령 생가 복원한다' 보도
- 1999. 12. 8. 국민일보 '봉화 이몽룡 생가' 관광사업 추진' 보도
- 1999. 12. 8. 영남투데이 '이몽룡의 생가는 봉화' 보도
- 1999. 12. 9. 대한매일 '춘향전 주인공 이몽룡은 실제 인물' 보도
- 1999. 12. 10. 양백신문 '춘향전 이몽룡 봉화사람' 보도
- 1999. 12. 13. 매일신문 ' 봉화서 성장한 청백리 성이성 춘향전 이몽룡 실존인물확실' 보도
'성춘향과 이도령은 실존인물이었다' 주장의 내용 요지
성춘향과 이몽룡. <춘향전>의 두 주인공은 여지껏 이런 이름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도령(李道令)으로 알려져 왔으나 ‘성도령(成道令)’으로 바꿔 불러야 할 판이다. (춘향의 성은 본디 무었이었는지 정확치 않다.)
' 이도령의 본래 이름은 성이성(成以性: 1595∼1664), 조선조 광해군 · 인조때의 실존 인물이다. 그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지역을 순행하다가 남원을 찾았다. 성이성은 다시 옛 연인을 만나보려 했지만 사랑하던 그 기생은 죽고 없었다. '
한국 최고의 로맨스이자 4대 국문 소설의 하나로 꼽히는 <춘향전>의 탄생비밀이 최근 한 국문학자의 끈질긴 추적 끝에 밝혀졌다. <춘향전의 형성과 계통><춘향전 비교연구>등 굵직굵직한 저서를 내놓으며 지난 30년 동안<춘향전> 연구에 괄목할 성과를 일궈온 설성경 교수에 의해 근 3백년간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던 이른바 '춘향전 신화'의 본디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설 교수는 오랫동안 <춘향전>이야기 '역사적 실체'가 숨어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이를 밝히는데 몰두해 왔다. 그는 최근 자신의 '가정'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자료를 손에 넣었다. 성이성 본인의 일기 따위를 후손이 편집해낸<계서선생일고(溪西先生逸稿)>와 성이성의 4대손 성 섭(成涉 : 1718∼1788)이 지은 <필원산어(筆苑散語)>가 그것이다. <춘향전>의 두 주인공 성춘향과 이도령의 실존 인물이었다는 그의 주장은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사료는 물론 민간에서 구전된 설화와도 면밀히 대조·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 십이월 초하루 아침 어스름길에 길을 나서서 십리가 채 안되어 남원땅이었다.. 성현에서 유숙하고 눈을 부릅뜨고 (원천부내로)들어갔다... 오후에는 눈바람이 크게 일어 지척이 분간되지 않았지만 마침내 광한루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늙은 기녀인 여진(女眞)과 기생을 모두 물리치고 소동과 서리들과 더불어 광한루에 나와 앉았다. 흰 눈이 온 들을 덮으니 대숲이 온통 희도다. 거푸 소년 시절 일을 회상하고는 밤이 깊도록 능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원문 생략)
이 구절은 이도령의 실제 인물로 추정되는 성이성 본인의 기록 '호남암행록'(<계서선생일고>에 실려 있음)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여기에서 설교수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늙은 기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밤잠을 설쳐가며 소년 시절을 회상했다'는 성이성의 진술. 설 교수는 "비록 성이성이 직접 옛 연인(또는 춘향)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앞 뒤 정황으로 보아 틀림없이 옛 연인을 그리워한 대목이라고 판단된다"라고 말한다.
설 교수에 따르면, 옛 연인(또는 춘향)은 기생이었음이 분명하고, 그 중에서도 관기(官妓)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옛연인(또는 춘향)이 성이성과 이별한 뒤 연정을 지키려다가 사적인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 관기(官妓) 사회의 규제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실제인물 성이성의 행적과 <춘향전>주인공 이도령과의 밀접한 관계는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 그대로 유입된 <필원산어>의 한 대목에 의해 더 구체적으로 뒷받침된다. 성 섭은 성이성의 4대손이며, 홍문관 교리·암행어사를 지낸 성기인(成起寅)의 아들이다. 성 섭은 <필원산어>에서 자신의 고조(성이성)가 남원 땅에서 행한 '암행어사 출두사건'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 우리 고조가 암행어사로 호남에 갔을 때 암행하여 한곳에 이르니 호남 열두 읍의 수령들이 크게 잔치를 베풀고 있었다... 한낮에 암행어사가 걸인 모양으로 음식을 청하니 ... 관리들이 말하기를 ‘객이 능히 시를 지을 줄 안다면 이 자리에 종일 있으면서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속히 돌아감만 못하리라’... 곧 한 장의 종이를 청하여 시를 써주었다. ‘독에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소반위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진다.’쓰기를 마치고 내놓으니. 여러 관리들이 돌려가며 보고는 의아해 할 즈음 서리들이 암행어사를 외치며 달려들어 갔다. 여러 관리들은 일시에 모두 흩어졌다. 당일에 파출시킨 자가 여섯이나 되었다. '
<필원산어>에 나오는 이 대목은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장면과 다름이 없다. 특히 성이성이 여러 관리에게 보여준 한시(漢詩) 구절은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내보인 한시 구절과 정확히 일치한다. 암행어사 출두 장면은 그것이 판소리 계열의 <춘향가>든, 소설계열의 <춘향전>이든 예외없이 실려 있는데, 이 중 한 대목 '술독에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라는 시구는 성이성이 지은 한시내용 그대로인 것이다. ※원문은 '金樽美酒千人血/ 玉盤嘉肴萬姓膏/燭淚落時民淚落/歌聲高處怨聲高'로 되어 있음
이쯤 되면 기왕의 <춘향전>은 형성요소의 절반이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춘향전>의 실제 모델을 밝히려는 노력이 과거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춘향전>발생(기원)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성이성은 일찌감치 60년대에 '1대 춘향전 연구가' 이자 설성경 교수의 스승이던 나손 김동욱 교수(작고)에 의해, 조선조 말 동시대인으로서 저마다 암행어사로 유명했던 노진·박문수·김우항 등과 함께 '실제 모델'후보로 거론되었던 인물이다.
당시 김교수는 성이성 관련 설화에 '춘향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설교수는 '미완의 연구'로 끝난 이 부분에 새로 발굴한 사료와 남원일대에 흩어져 있는 각종 고사와 춘향설화를 있대어 새로운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설교수는 이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춘향전>발생 시나리오를 다시 짜맞추고 있다. <춘향전>발생 경로와 관련하여 기존 학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설득력을 얻어 왔다.
하나는 <춘향전>이 무속(특히 무가)에서 발생해 진화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판소리를 통해 발생·진화 했다는 것이다. 설교수는 이에 대해 다른 견해를 내세운다. 즉, <춘향전>은 성이성 등 실존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절반으로 하고 각종 고사·설화 등 '허구'를 절반으로 하여 한 '유능한' 작가의 창작에 의해 최초의 텍스트가 성립된 이후, 각양·각층의 민중 참여(첨삭)를 통해 오늘날의 <춘향전>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KBS 1TV 역사 스페셜 프로그램 방영 요지
- 제 목 : 이몽룡은 실존 인물이었다.
- 담당PD : 장영주
- 방송일시 : 1999. 12. 4 (토) 20:00 ~ 21:00
- 방송요지
소설<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이 실제 모델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그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았던 인물일까? 남원의 성안의 부사의 아들, 성이성. 그가 바로 이몽룡의 실존 인물이다. 그런데 이것을 뒷받침할만한 기록이 전한다. 성이성의 4대 후손인 성섭이 지은 <교와문고 3권>. 여기에는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변사또의 잔치연에서 지었다는 한시와 그의 동일한 시가 발견된다. <춘향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이 또한 조선중기 인조 때 어사 성이성이 암행을 다니면서 쓴 친필<암행일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암행일지>는 암행어사들이 자신의 행적을 적은 어사일지. 성이성은 <암행일지>에 광한루에 들러 소년시절의 일을 생각한 기록을 남겼다. 그렇다면 소년시절의 일은 무엇일까? 이 역사 스페셜에서는 이몽룡의 실존설을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증거를 대고 그 실존 인물인 성이성의 삶과 행적을 살펴봄.
- 남원의 도령 성이성
- 남원 광한루 안에 있는 성안의 부사의 성덕비는 이몽룡 실존설을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 중의 하나다. 성안의는 남원에서 가장 오랜 재임기간을 보낸 부사로,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가 바로 성이성. 그렇다면 성이성은 어떤 인물이길래 춘향전의 모델이 되었는가.
- '금준미주 천인혈....'
- 암행어사 출두시 '금준미주 천인혈...'이라는 시가 춘향전에 삽입되게 된 경위가 밝혀졌다. 이 시를 국내에서 처음 소개한 사람은 바로 성이성의 스승 조경남. 이 시는 조경남에서 성이성으로, 성이성에서 춘향전으로 전해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 사실의 검증.
- 성섭의'교와문고'
- 그동안 출처 미상으로 그 일부분만이 <필원산어>로 알려져 있던 책<교와문고>전 3권 최초 공개!!! 성이성의 4대 후손인 성섭이 지은책 <교와문고>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 ......" <춘향전>의 하이라이트인 암행어사 출두 부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더구나 당일 파직시킨 6명은 세도가의 자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암행어사 출두는 실제 성이성이 행한 것일까? 그 진위를 밝힘.
- ‘성몽룡’ 아닌 ‘이몽룡’이 된 까닭
- 지금까지 발견된<춘향전>의 판본은 100여가지다. 그런데 이 판본들에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저자가 밝혀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었일까? 당시의 시대에는 기생과 사랑 놀음에 관한 책을 지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물며 거기 나오는 주인공은 더했을 것이다. 양반과 기생의 사랑이야기가 광대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자 성을 바꾸게 된 <춘향전>. 그 사연 들음.
- 광한루의 잠 못 이루는 밤
- 암행어사 성이성은 늙은 기생과 늙은 아전이 다녀간 뒤 눈내리는 광한루에서 소년 시절의 일을 생각하고는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인조 25년 12월 1일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춘향은 어떻게 된 것일까?
※ 역사스페셜팀은 연세대 설성경 교수(국문학과)와는 별도로 성이성의 친필<호남암행록>원본, <교와문고>원본을 최초로 찾아내고, '금준미주'시가 바로 성이성의 스승인 조남경에게서 나왔음을 밝혀낸다. 설성경 교수와는 절반이상 취재가 이루어진 후 만나 의견이 동일함을 확인하고 부분 동행 취재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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