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홍익한(1586-1636)

상세내용

  처음 휘는 습(霫), 자(字)는 백승(伯昇), 호는 화포(花浦) 또는 운옹(雲翁), 시호는 충정(忠正), 본관은 남양으로 진사 이성(以成)의 아들로 문단2리(阮邱)에서 태어났다.
  월사 이정귀(李廷龜)의 문인으로 광해 7년(1615)에 사마시를 거쳐 인조 2년(1624)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했다. 사서(司書)를 거쳐 인조 13년 장령(掌令)이 되었다. 이듬해 청나라가 굴욕적인 조건을 걸고 사신을 보내오자 상소하여 그를 죽일 것을 주장했고 이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명길(崔鳴吉) 등의 주화론을 적극 반대했다. 다음해 화의가 성립되자 조정의 권유로 청군의 화를 피하고자 평양부서윤(平壤府庶尹)으로 나갔으나 끝내 오달제(吳達濟), 윤집(尹集)과 함께 청나라로 잡혀가서 순절한 삼학사(三學士)의 한분이다.
  경기도 광주 「현절사」, 평택 「포의사」 평양 「서산서원」 부안 「동도서원」 영주 「장암서원」, 고령 「운천서원」 등에 제향되고 출생지인 봉화문단에 충렬신도비와 정충각(㫌忠閣)이 있고 저서로는 화보집(花浦集), 이행록(以行錄), 서종록(西從錄)이 있으며 효종 4년에 증 도승지, 숙종 12년 증 이조판서 숙종 31년에 영의정에 증직하고 영조 33년에는 부조위(不祧位)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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