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권벌 (1478~1548)

상세내용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沖齋), 시호는 충정공(忠定公), 본관은 안동으로 성균생원 사빈(士彬)의 둘째 아들이다.
연산 2년(1486)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종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도승지(都承旨), 예조참판겸동중추부사가 되었다. 당시 사람파와 훈구파의 반목이 심하자 양자간을 조정하려다가 잘 안되어 삼척부사로 나왔다가 42세 되던해에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닭실에 터를 잡아 15년간 은거했다. 다시 부름을 받아 밀양부사, 한성좌윤을 거쳐 1538년에는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형조와 병조의 참판, 한성판윤을 지냈다. 종계변무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오위도충부의 도총관, 병조판서, 예조판서를 거쳐 숭정대부(崇政大夫), 우찬성(右贊成),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겸임하고 명종이 즉위하여 원상(院相)이 되었다. 을사사화(1545)가 일어나자 억울한 선비들을 구하려다가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평안도 삭주(朔州)에 유배되어 71세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간신 정막개, 이극돈, 유자광을 논죄하였으며, 소릉(단종모후)의 복위와 단종과 연산군의 후사를 세울 것을 여러 차례 주청하였다. 선조 1년에는 좌의정, 24(1591)에는 영의정에 증직되고 종계변무의 공로로 광국공신에 추서되었다. 삼계서원에 배향되고 충재집을 남겼다.
  유물로는 충재일기 6책(보물 제262호), 근사록 4권, 그밖에 전직류, 고문서, 유묵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 충재유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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